미래를 속단하지 말라

이틀 전, 금융권에 있는 지인이 의사 한 분을 소개해 준다고 하여 나도 회사 동료를 데리고 나가 넷이서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의사는 30대 초반에 6억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가, 최근 5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여 그 빚을 청산하였고, 이제 본인의 병원을 갖기 위해서 개원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대단히 희망찬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개원이 그에게 더욱 의욕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개원에 앞서 그 의사는 어떠한 사업가로부터 모종의 투자를 받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도 100평이 넘는 곳에 크게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의사와 저녁을 먹고 실제로 개원할 장소를 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중에, 그 사업가로부터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어 투자가 어렵게 되었다는 문자가 그 의사의 휴대폰에 찍히는 것을 보았다.

이 순간 나는 그 의사의 대응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평소에는 사람의 정신적인 깊이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큰 좌절이나 실패 직후에 그 사람의 진짜 잠재력이 나타나게 된다. 이미 좌절을 극복해 본 사람은 쉽게 털고 일어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극단의 경우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다행히 내가 만난 그 의사는 전자에 가까워 보였고, 대단히 침착하게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모든 시선이 미래로 향하는 습관이 있다. 즉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잠시 스스로의 시선을 과거로 돌려보면 어떨까.

지금의 당신이 어떠한 상황(예를 들면, 계획의 성공이나 실패, 재산의 증감, 사람 관계의 변화 등)에 처해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단 1년 전에라도 정확히 예상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좋은 일을 예상했다면 방지책을 마련했을텐데 그렇지 못하였다. 반대로 좋은 일이 있다면 더 좋게 키울 수 있었을텐데 그런 경우도 대단히 드물다. 실제로 앞일을 예상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1년 전에 지금의 나의 모습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바와 같이, 지금부터 1년 후 조차 아직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앞일은 단기간이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에 무엇을 할지를 잘 정하여, 아까운 미래에 올 시간을 미리 속단하여 기회마저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다시 내가 만난 그 의사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약간 기존의 계획에서 틀어졌지만, 분명 잘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을지 안읽을지 모르겠고, 읽는다 하여도, 이 이야기가 본인 이야기인지 모르지 싶지만, 아무튼 그 의사는 이미 큰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