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이 디딤돌이다
2011년 10월 23일 8개의 댓글
태어나면서부터 의사가 필요했던 아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한 부부에게서 아들이 한 명이 태어나는데, 그 아기는 체중이 다른 아이보다 현저히 적게 나갔고, 유달리 혈색이 좋지 않았다. 그 부부는 아이를 낳은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아이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니 얼른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찾아간 서울대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선천성 심장병이 있으니 얼른 수술을 시작하지 않으면 오래 살기 힘들다는 충격적인 사실. 자라나는 동안 그 아이는 3차례에 걸쳐 심장을 여는 큰 수술을 연달아 받게 된다. 학창시절 그 아이는 주치의 선생님 얼굴이 담임 선생님 얼굴보다 더 익숙했다.
나도 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수술을 마친 고등학교 1학년 말, 병실에서 기운이 빠져 창밖을 내다보니 밤이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그 건물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의학 도서관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밤늦게 공부할 수 있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그 아이도 그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팔 다리에는 이름 모를 주사를 꼽고 자면서도 꿈속에서 만큼은 흰 가운을 입고 다른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포기하는 것을 택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한 달이 넘는 입원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학교 수업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어 있었고, 몸은 피곤하여 조금만 움직이면 숨쉬기조차 가빴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중 이듬해 봄 학내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심장을 열고 인공판막을 이식한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라 그 누구도 그 아이가 마라톤에 참가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주치의는 만약 이 상태로 마라톤을 뛰면 수술부위가 파손되어 죽을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날 담임 선생님 눈을 피해 마라톤 출발선에 서있었고, 결국 끝에서 2번째 순위로 완주를 해낸다. 그 아이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낫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 마라톤을 완주한 후부터 그 아이는 무한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집이 태풍에 날아가 버리다.
고 3때 학교 근처의 자취방을 얻었는데, 산비탈에 있는 1년에 100만원짜리 허름한 단칸방이었다. 산비탈에 있다는 점과 밤에 쥐들이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소리가 나는 것 외에는 나름 조용하여 공부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한밤중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으면 한쪽에서 쥐들이 후두둑하고 오른쪽으로 뛰어가고 그럼 오른쪽에서 고양이가 야옹~!하면 다시 후두둑 소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그것을 보며 나도 저 쥐들처럼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도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기 시작하던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그는 고3을 그런 곳에서 홀로 지내야 했다. 당시에 그 시골에는 과외는 물론 학원도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모든 대입 준비를 홀로 해결했다. 그래서 그 아이가 택한 방법은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문제집을 다 풀어버리는 단순 무식한 방법이었다. 사실상 그 아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고 3의 여름을 보내고 있던 중,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데 태풍 때문에 창문이 떨릴 정도로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수업을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가보니 놀랍게도 자취방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 버려 벽체만 남은 방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듯 정말 집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수능을 서너 달 앞두고 모든 문제집이 물에 젖고 그동안 정성들여 정리한 노트는 번져서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려고 방에 누우니 천장이 없어져서 밤하늘의 별이 그대로 보였다. 그 별빛 가운데 어딘가에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나한테만 시련을 주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너무 서러워서 밤새 울었다. 그 다음날 그 아이는 조금도 지체없이 서점으로 향한 후 이제까지 풀었던 모든 문제집을 모조리 다시 구입해서 처음부터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이듬해 3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저 사람들의 피가 너를 살렸을지 모른다.
그 아이는 이제 꿈에서나 그리던 의대생이 되었다. 세상을 모두 손에 넣은 것 같았다. 그가 경상남도 농촌에서 이제 막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어느날 그의 아버지는 서울구경을 시켜준다며 서울역과 남대문 시장 일대에 데려갔다. IMF 직후라는 어수선한 시대적 상황에서 서울역, 을지로 입구역을 비롯한 도심의 지하철역들은 만취상태의 노숙자들로 넘쳐났었다. 길을 가던 그가 노숙자 앞을 지나가며 악취가 심하게 난다며 본능적으로 코를 막으며 움찔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차갑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 내놓은 피가 너를 살렸을지 모른다.” 그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을 살린 것은 의사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모르게 세상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나의 삶이 나의 것이 아니란 것을. 그 누구의 말처럼 이 삶이란 여정 자체가 보상이란 것을.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
6년의 시간이 흘러 그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의사가 된다. 창문 너머로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다.’라고 되뇌이며 꿈처럼 바라만보던 바로 그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인가 부터 그의 마음속에 불만족스러운 생각 하나가 싹트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봐서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이들의 숫자가 너무 제한적이다. 평생을 쉬지 않고 진료해봐야 서울시 인구의 1/3도 안되는 300만명을 치료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그 아이는 고민 끝에 과학자의 길을 택하여 대학원에서 신경약리를 전공하기로 한다. 신경계를 통하여 네트워크의 근본 원리에 대해 탐구하여 가치사슬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약을 만들어 그가 없는 곳에서도 약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생각이 그를 그 길로 이끌었다. 그는 연구하면서도 항상 ‘약이 기차면 네트워크는 기찻길이다.’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신경과학에 대한 연구는 그로 하여금 인터넷을, 선들이 얽히고 설킨 무생물이 아닌, 전기 신호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의 신경계로서 이해하게끔 하는 새로운 시각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손바닥 위 컴퓨터의 기억.
2009년 한국의 뉴스는 온통 스마트폰이라는 것으로 떠들석 했다. 그는 그런 현상을 보면서 20여년 전 집에 컴퓨터를 처음으로 들여놓던 시절을 떠올린다. 당시는 ‘컴퓨터를 책으로 배우던 시절’로 실제로 본 컴퓨터라는 물건은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렇게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는 이제껏 실제로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컴퓨터 자체보다 그 아이를 설레게 한 것은 그의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것보다 훨씬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머지않아 손바닥 위에 올라갈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때 그는 그게 전혀 이해가 안갔다. 들기도 힘든 이 큰 모니터와 키보드, 본체가 어떻게 사람 손위에 올라갈 정도로 작아지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이해가 안되었다.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그 말은 그 이후 그의 마음속에 남아 그런 날이 오기를 내심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공부하고 있던 2010년의 그에게 스마트폰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은 오래 전 시작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친구가 막 개통해서 가져온 스마트폰을 실제로 보니 그것은 말그대로 ‘손바닥 위 컴퓨터’였다. 그리고 결국 이 작은 기계가 사람의 감각을 대체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눈을 대체할 카메라가 있고, 귀와 입을 대체할 마이크와 스피커가 있으며, 중력가속도도 측정할 수 있으니 사람의 균형감각도 구현할 수 있었다. 즉 이 작은 기계가 머잖아 의사의 감각을 보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당시에 뉴스에서는 무인폭격기가 중동지역의 테러리스트를 공격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않게 나왔다. 멀리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멀리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향해야 한다. 의사에게 있어 이 스마트폰이 그러한 원격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직접 뛰어야 바람개비가 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자신이 구상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래머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녔다. 꿈만 갖고 있다고 그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다. 결국 스스로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함께 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열심히 뛰어다니면 바람개비는 돌아가는 법이다. 그러다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을 마친 한 프로그래머를 만나게 된다. (당시 그 계기가 된 게시물) 카페에서 처음 둘이 마주앉아, 그는 다소 뻔뻔하지만 차분하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의사와 환자를 언제 어디서든 연결하는 도구를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보상을 드릴 수 없지만,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그 프로그래머는 본인도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그렇게 2010년 5월, 이제껏 존재한 적이 없던, 세계 최초로 여러명의 의사들이 직접 응답하는 휴대기기 기반의 의학 상담 도구 개발이 시작되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언제 어디서나 의료기관에 접속하여 자신의 상태를 의사와 상의할 수 있는 가상의 네트워크. 사실 이러한 구상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이미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심어져 있는 여러가지 아이디어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대단하거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를 누가 만들 것인가. 그는 ‘누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릴 바에야 직접 만드는 것이 어떨까.’라는 결론에 이른다. 더군다나 어릴적 그가 바로 그런 도구를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운동장에서 뛰다가 가슴이 뻐근해오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의사를 만나는게 가장 급선무였지 않았는가. 이 도구로 인하여 죽어가야 할 생명을 하나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살아난 자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시간에도 밤새워 연구하고, 일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결국 한사람으로 인하여 세상은 조금 더 좋은 곳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 낮에는 각자의 일을 하고, 모든 개발 작업은 밤 10시 이후에 시작되었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메일로 작업 상황을 주고 받으며 약 한달 간 그가 구상해온 어플리케이션이 만들어졌다.
(우측 이미지 : 2010년 6월 중순에 처음 세상에 선보인 의학 상담 어플리케이션. 당시 영어권을 포함한 모든 어플리케이션 중 의사가 직접 의학 상담을 진행해 주는 어플리케이션은 이것이 세계 최초였음.)
프로그래머가 밤을 새워 기능을 구현하는 동안 그는 디자인을 담당했다. 의학 논문에 들어갈 사진을 배열하는 것이 포토샵 활용의 전부였던 그에게 디자인은 너무나 큰 숙제였다. 게다가 그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세상을 바꾼다는 각오로 하는 일에 그 정도가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이 수익을 만든다.
디자인적인 한계와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몇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의학상담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이트에서 의사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칼럼도 운영했는데, 이용자가 많은 날은 구독자가 하루 10만 명을 넘길 때도 있었다.). 따라서 뭔가 다른 전략이 필요하게 되었고 우선 그는 회사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회사라고 해봐야 오피스텔 하나를 임대해서 컴퓨터 몇대를 설치한 것이 전부였다. 사무실 한켠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하루 2시간 정도를 자며 수개월을 강행군으로 일했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커져서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작은 회사지만 그래도 직원들과 바베큐 파티가 가능한 앞마당을 갖춘 강남 학동역 근처의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만든 도구가 자체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즉 수익이 있어야 했다. 그는 수익이란 ‘남을 도와준 것이 숫자로 표현된 기록’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도와주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차례였다. 그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의사들이었고, 과연 의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자신도 의사였지만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매일 새벽 3시를 넘겨가며 자료를 모으고 다각도로 해석해 보았다. 책상에서 넘쳐흐른 A4 인쇄물이 급기야 바닥을 덮기 시작하더니 실수로 미끄러지기 일수였다. 그렇게 깊게 파고 들어가면 파고 들어갈수록 절실히 느낀 것은, 2010년의 한국의 의사들이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의료계의 전반적인 상황이 암담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동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개원가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였는데,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는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경우 절반 가량의 병의원이 운영이 어려워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그는 대형 병원 보다는 동네의 의원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노력이면 더 큰 효과를 얻는 쪽을 택하기 원하였고, 그말은 곧 더 큰 어려움에 처한 쪽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좌측의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절대 다수는 의원, 흔히 알고 있는 동네 의사들이 치료하는 곳들이다. 이런 지역 기반이 건전해져야 사람들이 아파도 안심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대형병원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며 그런 것은 옳지도 않다. 또한 그 자신도 동네 산부인과에서 처음 자신의 병을 발견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동네 의원들의 기반을 탄탄하게 해줄까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와 함께 할 파트너를 동네 의원들로 정하게 되었다.
문제는 의사의 숫자는 급격히 증가하는데 그 증가폭이 전체 인구의 증가폭을 훨씬 압도한다는데 있다. 그 결과 의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대단히 많은 의사가 본인들이 집중해야 하는 진료가 아닌 외적인 영역(이를테면, 병의원 마케팅 등)들에 신경을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잠재적 환자인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의사들은 진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의사가 아닌 이들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혹자는 의사 1인당 담당할 환자수가 감소하는 것이 환자 개개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의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수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앞서말한 외적인 영역을 포함하여,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고수익의 치료에 집중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곧 심장 수술, 신생아 분만 같은 생명과 직결된 수술이나 거의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치료를 수행할 의사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우선 그는 의사들이 의지만 있다면 자본이 많지 않아도 환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생태계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가 아는 한, 세상에는 환자를 생각하는 좋은 의사들이 대다수이며 일부 의사들의 욕심에 의해서 그런 좋은 분들의 모습들이 가려지고 있었다. 만일 이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환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환자와 의사 사이에 형성된 불신도 많은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의학적 고민을 지역과 과목으로 세분화해서 각 지역의 의사들에게 자동으로 배정하는 프로그램을 기존에 구축된 의학 상담 기능에 추가했다. 그 다음 의사가 환자의 고민에 귀를 기울여주고 충실히 답변을 달면 더 많은 환자에게 소개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구축하였다.
신경계를 인터넷에 이식하자.
이 과정에서 그가 대학원에서 전공한 신경과학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치 말초신경에서 감각 정보를 받아서 대뇌로 전달한 후 감각의 종류를 판별하여 행동에 대한 지시를 내리듯, 인터넷에 신경계의 복제품을 이식하였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은 말초신경이며, 그가 보유한 프로그램은 전두엽의 기능을, 공간정보를 포함한 DB를 저장하는 서버는 해마의 기능을 하고, 근육의 기능은 각 지역에 산재한 병의원이 맡게 된다. 또한, 중간중간 신경전달물질과 피드백에 해당하는 기능들을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대체시켜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마지막으로는 신경의 가소성이라는 최근 주목되는 이슈도 프로그램화하여 구축한 시스템이 점차 학습하여 더 훌륭한 의사가 부각되도록 구상했다. 궁극적으로 각 지역과 과목으로 세분하여 환자들이 먼 곳의 대형병원을 찾지 않고도 최적의 동네 의원을 찾아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운영하고자 하였다.
3개월 쯤 지나자 의사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사진과 신청서를 보내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갈수록 그의 뜻에 동참하는 의사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에 원하는 모든 병원에게 투명한 가격 정책과 병의원의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안을 제시하며 환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여 주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파는 것이 아닌 그것을 활용하여 환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원래의 목적을 이루게 해주었다. 당시 다른 업체들에서는 병의원당 수백만원을 받고 제작 후에는 나몰라라 하는게 일반적인 행태였는데 그는 가격면에서 거품을 제거하여 투명하게 진행했을 뿐 아니라 활용을 위한 후속 안내도 철저하게 제공해 나갔다. 사실 기존에 병의원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던 업체 입장에서는 병의원만큼 만만하고 편한 고객도 없었다. 의사들은 보통 마케팅이나 IT 쪽에 문외한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의사들을 상대하는 이들 제작 업자들은 사이에서는 속된말로 ‘부르는게 값’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A/S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기존 어플 제작 업체들은 이러한 상황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그는 이런 파격적인 병의원 어플리케이션 보급정책을 중단하라는 협박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사실 그의 성격 자체가 주위에서 뭐라하든 별로 신경을 쓰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냥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그러한 기존의 불건전한 시장구조는 꼭 그가 아니더라도 시장 자체의 부패로 스스로 붕괴될 운명이라는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결국 그의 회사는 병의원이 운용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중 80~90%에 이르는 점유율에 도달하게 된다. (관련 언론 보도 : 동아일보, 한겨레, YTN,아시아투데이, ZDNet Korea, 메디게이트뉴스)
희망은 눈뜨고 꾸는 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의사와 환자 양측에서 큰 지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네 의원과 환자들의 중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가 만든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누구나 손바닥 위의 작은 도구를 활용하여 근처의 병원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가 오래전 병상에 누워서 꿈꾸던 세상처럼…
맺음말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글제목 ‘걸림돌이 디딤돌이다.’는 내가 시련을 맞닥뜨릴 때마다 돌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되뇌었던 나만의 주문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를 기계와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인본주의적인 의료 시스템이 건설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을 보게 될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당신이다.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질 것이다.
의사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20세기 초 자동차와 마차가 같은 길에서 다니던 시절, 어떤 사람은 시장성이 확실한 말발굽을 계속 만들어 팔았지만,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타이어라는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 둘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나는 우리 의사들이 타이어를 택한 자들과 같은 길을 가길 원한다. 지금처럼 당신들을 교체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세상에 머물러있을지, 아니면 당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넓은 무대에 오를지 곰곰히 고민해 보아라.
당신이 의사이건 아니건, 지금 글을 읽는 당신의 손바닥을 하나 펴보아라. 나의 꿈은 당신이 지하철에서건, 공원에서건 그 손바닥만 펴면 의사와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이 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의 자유 의지로 돌 하나를 보태게 되는 것이다. 당신들의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집에 혼자 있다가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져서 외로이 생을 마감하는 위험도 사라질 것이고, 산속에서 구호조치를 하는 방법을 몰라서 오랜 친구를 잃는 일도 더이상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의사들이 당신 손위에 있는 작은 도구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당신을 도와주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부 속 작은 칩을 통해서 평생 건강 관리를 받을 것이고, 암이 걸릴지 미리 알아내어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죽는날까지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다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 속에 잠을 자듯 고통없이 눈을 감는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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